1970~80년대 한국 영화계 전성시대를 이끈 이장호 감독
안녕하십니까? 송의달 에디터입니다. 이번주 [송의달의 모닝 라이브]에선 1970~80년대 한국 영화계 전성시대를 이끈 이장호 감독을 만났습니다.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인 이 감독은 요즘 '하보우만의 약속'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때 좌파 문화예술인이었던
그는 70대 후반 나이에 왜 이승만과 박정희 등 두 분 대통령에게 "죄송하고 사과드린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하보우만의 약속' 영화에서 "나 자신처럼 속았다가 깨달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담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변신 과정과 지금 그의 생각과 관점을 들어 봤습니다. 연일 염천(炎天)입니다. 폭염 잘 이겨내시면서 건강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송 의달 에디터 드림 (이메일 주소 : edsong@chosun.com, edsong24@gmail.com)
이장호 감독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하는 이유
이장호 감독이 2023년 8월 2일 서울 북아현동 사무실에서 '하보우만의 약속' 큐시트 참고자료를 들고 서 있다. 이 감독은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배우다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 '별들의 고향'은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당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46만명을 모았다./송의달 기자
이장호(李長鎬·78) 감독은 1970~80년대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입니다. 그는 28세에 데뷔작으로 만든 ‘별들의 고향’으로 1974년 대종상(大鐘賞) 신인감독상을, 1980년엔 ‘바람불어 좋은 날’로 최연소 대종상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1985년에는 ‘어우동’으로 48만명 관객을 동원해 최고의 스타 감독이 됐습니다. 당시엔 관객 5만명이면 대히트작이라 했습니다. 그는 1980년대 문화 운동 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결성 당시 민족영화분과위원장을 맡았고 스크린쿼터(screen quota·한국 영화 의무 상영 일수) 폐지 반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逝去)한 다음날 새벽에 아버지가 ‘만세 만세’하면서 집 2층에서 내려오실 정도로 집안 전체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한(恨)이 맺힌 게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감독은 그러나 지금은 우파 예술인 전사(戰士)입니다. 그는 2011년 시작된 북한인권국제영화제의 공동조직위원장과 락스퍼(Larkspur)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감독은 “인권(人權)은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다.
인권에는 좌우(左右)가 존재할 수 없다. 영화제에 출품된 북한 인권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요즘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제작 준비로 바쁩니다. ‘하보우만’은 애국가(愛國歌) 가사의 후렴구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의 줄임말입니다. 절대자(絶對者)인 하느님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이 숱한 위기를 넘기고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자는 이달 2일
낮 서울 북아현동 소재 사무실에서 이 감독을 만났습니다. - ‘하보우만의 약속’을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가 탄핵만 다루려니 속이 안 찼어요. 탄핵의 부당성 등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의한 건국(建國)부터 대한민국 역사를 다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영화의 마지막은
윤석열 정부 출범입니다.” - 지금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습니까? “시나오리 역할을 하는 큐시트(cue sheet·방송이나 공연 따위의 연출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놓은 일정표) 자료를 정리하고 있어요. 제작 경비는 독지가를 중심으로 거의 마련됐어요. 흥행과 홍보, 후원 등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하나로 영화 티켓을 미리 판매할 생각입니다. 무리해서라도 내년 봄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영화의 주 대상은 누구입니까? “미래의 대한민국 주역들, 즉 지금 중고교·대학생과 청년들이 많이 볼 수 있게 만들려 해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부분은 삽화와 시사만화 등을 많이 활용해 약간 넌센스 코미디처럼 제작하려 해요. 20~30대를 실무자로 많이 쓰고 컴퓨터그래픽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영화적 감각으로 보여줄 겁니다.” - 영화 제목에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원래 기독교 신자입니까?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 개봉 무렵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영화를 개봉상영한 명보극장의 주인인 신영균(申永均) 선배님이 장로로서 운영하던 ‘신우회(信友會)’에 저도 가입했지요.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듣다가
느낌이 왔어요. 지갑 속에 부적(符籍)을 넣고 있던 사실을 고백하고 그 자리에서 불태웠죠. 그래도 영화 흥행은 잘 되었습니다.” 그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그후 허병섭 목사라는 분이 저를 보고 싶다 해서 만났더니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 달라. 목회자들이 하는 역할을 당신이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영화를 인기 또는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분 말씀에 감동받았어요.
‘어둠의 자식들’ 같은 현실을 고발하는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장호 감독이 서울 락스퍼국제영화제 포스터 앞에 서 있다. 그는 2022년과 2023년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연이어 맡았다. 락스퍼꽃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한다. 자유·정의·인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락스퍼국제영화제는 2021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송의달 기자
1966년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맞아 충남 아산 현충사 본전 앞에서 기념식수하는 박정희 대통령/뉴시스
- ‘하보우만의 약속’ 관점에서 보면 한국 역사는 어떠합니까? “저는 하느님과 대한민국의 ‘약속’이라는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한민국은 결국 하느님이 일으켜 세워주신다,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 두 분 대통령은 하느님이 선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성경(聖經)의 구약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埃及·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잖아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모세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인간이 못하는 걸 하느님이 해주신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저도 한때 두 분 대통령을 독재자(獨裁者)라며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오해를 많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마치 6.25 직전 해방 공간에 박헌영이 남로당 세력을 확대하는 것 같은 나라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해졌죠. ‘하보우만’ 영화에서 저처럼 속아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변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 해요.”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존경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내면(內面) 깊숙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라는 소년적 의지(意志)를 가졌고 초등학교 선생님 됐을 때 그게 변하지 않았고, 군인과 국가
경영자가 되고서는 더욱 강해져 완전히 자기 목숨을 건 사명(使命)으로 삼았다고 생각돼요. 이승만 대통령도 똑같은 게 청소년 때 왕권(王權) 정치에 대해 회의(懷疑)를 느꼈거든요. 그래서 역적이 돼 감옥살이를 하며 수난당하고 기독교와 영어를 터득해 평생을 조국 독립과 건국에 바쳤지요. 두 분은 초심(初心)대로 끝까지 생애를 산 진짜 위인(偉人)이지요. 지금 정치인들에게 없는 부분입니다.” - 두 분 대통령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나요? “대항할 만한 철학도 없으면서 그 사실을 빨리 고백하지
못하고 삐뚤게 살아온데 대한 후회가 많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처럼 올바른 국가 의식과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이예요. 제가 박 대통령께 불손(不遜)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 하지만 아직 두 분을 비난하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숭앙(崇仰)하고 숭모(崇慕)하는 움직임이 점점 불길이 돼 퍼지고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나요? “1980년대 중후반인가 김대중 후보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연설할 때 김 모 여자배우 데리고 가 지원한 게 유일했어요. 그 후 작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를 처음 지지했어요.” -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지난 대선에선 누가 야당 후보가 됐더라도 그를 지지했을 거예요. 사람 보다 정권 교체가 훨씬 중요했지요. 윤 대통령의 첫인상은 걸음걸이부터 조폭 두목 같았어요. 그러나 추미애, 조국 등에 맞서는데 의외로 강한 이미지를 받았어요. 그가 자리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1920년 12월 중국 상하이에 도착한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임에 참석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화환을 두른 사람이 이승만,그 왼쪽은 이동휘 국무총리, 오른쪽은 안창호 노동국 총판/조선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딱 적절한 시기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 하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잇겠다는 조짐이 보여요. 김영삼 이후 대통령들은 자유에 대한 확신이나 북한에 대한 단호함이 없었어요. 정치적 테크닉(technique)만 습득한 이들과 윤 대통령은 훨씬 달라요.” - 문화예술계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화예술에 대한 건 바라지도 않아요. 아주 순수하게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 길’만 제대로 열어줘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하나님이 선택한
대통령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다.” - ‘그 길’이 무엇입니까? “최근 수년 동안 종북(從北) 세력이 어둡게 해놓은 것을 걷어내고 바로세우는 일이지요. 대한민국 건국부터 역사와 역사관을 똑바로 해야지요. 종북 세력이 뒤집어 씌우는 게 많으니까 옆에서 보면 불안할 때가 한 둘이 아닙니다. 종북 세력에 맞서 제대로 확실히 정리하기만 해도 ‘큰 일’을 하는 거라고 봐요.” -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으로 한국 영화가 잘 나가는데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희 또래만 해도 문학을 통해 성숙된 뒤 영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은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에 친숙해지고 공부를 한
영화(映畫) 세대입니다. 거기에다 과거 B급 영화로 간주되던 판타지와 폭력 영화가 스피드를 겸비해 지금은 A급이 됐는데, 봉준호 감독 등이 이를 잘 접목하고 활용해 세계적 감독이 된 거죠.” 그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좀 만들 수 있게 된 게 유년 시절 아버지가 미 군정청(軍政廳) 공보부 소속 영화 검열관(檢閱官)이셔서 아버지와 같이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이예요.
제목, 배우, 스토리도 모르는 채 많은 영화 화면들이 머릿속에 입력된 거죠. 어렸을 때 경험이 정말 중요합니다.” - 앞으로도 한국 영화가 계속 잘 될까요? “저와 덕수초·서울중·서울고 동기동창인 최인호가 1974년 4월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청년문화 선언’을 했어요. 우리는 1945년생 해방동이로서
한글 전용과 미국식(式) 민주주의 교육을 처음으로 받아 일본적 잔재(殘滓)와 단절한 세대이죠. 이장희, 송창식 등의 청바지·통기타·생맥주가 상징하죠. 그런데 이런 ‘청년 문화’가 점점 하다가 BTS까지 왔어요. 저는 여기에 한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 무슨 말씀인가요? “한글을 보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고 아래위[上下] 옆으로 다 조합이 돼 있어요. 이게 하나의 조형(造形)입니다. 한글 조형을 어렸을 때부터 자꾸 다루면서
예술에서 가장 기초인 조형 감각이 발달하게 돼요. 저는 이 한글 덕분에 대한민국은 문화 쪽이, 지금 꽃 피기 시작하는데 반드시 만개(滿開)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형 감각이 기초가 돼 그게 움직이면 댄싱이 되고, 몸짓으로 결합하면 춤·동영상이 되니까요.” - 예전 ‘스크린 쿼터 폐지 반대 시위’에 참여했습니다만, 2008년 광우병 시위와 2016년 촛불 시위때는 여러 배우와 가수·코메디언 등이 나왔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한일(韓日) 회담 반대 시위 등에 참여않고 남의 일처럼 여겼어요. 문화예술인들이 군중(群衆) 앞에 나오는 것은 일종의 스타의식과 처세술 때문인 것 같아요. ‘머리가 텅 빈 사람 아니다’는 걸 보이려는 의도도 있구요. 하지만 유명 스타의 참여는 파장이 매우 커요. 그래서 사회주의 체제는 문화연예인들을 대중선동의 도구(道具)로 사용하죠. 문화예술인들이 자기 확신이나 신념이 없다면 경거망동(輕擧妄動)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이슈에서는 예술인들이 조용한 것 같습니다. “원전 오염 처리수가 인체에 문제없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증명했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요. 문화예술인들이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한 쪽 주장을 잘못 편들었다가는 망신당하기 딱 좋지요.” - 북한인권 국제영화제나 락스퍼 국제영화제 등에 적극 참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돈이나 대중적 인기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북한 인권은 정부, 기업인, 국민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신경 안 쓰는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햇볕정책을 폈지만 실수요자인 북한 주민들에겐 연결되지 못했어요. 같은 동포인 한국 국민들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생각으로 매달리고 있어요.”
영화 '기생충' 포스터.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만든 7번째 장편 영화이다. 2019년 5월 30일 개봉된 블랙코미디 가족 영화로 지금까지 10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조선일보DB
‘청년문화의 우상’으로 주목을 받은 젊은 작가 최인호의 소설‘별들의 고향’의 연재를 예고한 1972년 8월 26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 당시 최인호는 27세였다./조선일보DB
그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좌파 정권 때는 북한 인권 영화제를 정부가 나서서 막았어요. 김대중 정권 시절 그의 추종자들은 북한과 교류를 활용해 자기 이익을 챙겼어요. 지금 야당인 민주당은 북한 인권의 인(人)자에 관심 조차 없어요. 그들은 개인의 권력 획득이나 영달(榮達)에 도움될 때만 북한을 잠깐 이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워요.”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 본인이 특별히 아끼는 게 있나요? 이 감독은 또 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좋아합니다. 이것을 사람들 앞에서 몇 번 읽었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국민교육헌장을 보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라고 돼 있어요. 박 대통령의 얼과 성격 배여 있고 하나하나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명문(名文)이예요. 사무실에서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을 펴서
종종 읽어요.” - 올해 8월 15일이면 대한민국 정부 출범 75주년을 맞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나라 제헌국회는 목사(牧師)인 이윤영 의원의 축도(祝禱)로 시작했어요. 기독교를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때
먼저 도망갔느니 수도를 버렸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아니예요. 이 대통령이 경남 진해(鎭海)에 피난차 도착하자, 미국은 이 대통령에게 일본으로 임시수도를 옮기라고 했어요.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진해에서 죽겠다’며 이를 거부했어요. 반대로 인천 상륙작전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김일성은 중국으로 도망갔어요.
그런 걸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참 대단한 애국자예요.” - 이번 다큐영화를 만드는데 대해 영화계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들 얘기하는지 잘 몰라요. 영화계에서 신경 써서 나를 도와줄 수도, 반대로 해코지 할 수도 없어요. 사무실에 여러 자료들이
많은데 이게 전부 밖에서 보내주는 것들입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 이렇게 자료를 보내주는 게 다 응원이죠. 작품을 기대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그만큼 많아요.” - 남은 삶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대중 흥행 영화가 아니라 기독교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하보우만’과는 별개로 하고 싶어요. 신의 포엠(poem·詩)이랄까, 에세이(essay)랄까. 다큐멘터리에다
배우를 써서 새로운 형태로 극장용 영화를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 만들어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작정입니다.” 이 감독은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20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스무번째 작품으로 ‘시선’이라는 기독교 영화를 제작했어요. 마침 개봉일에 세월호 참사가 터져 제 영화도 희생됐어요. 그때
하느님은 관객들 많이 들어와서 돈 버는데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더 큰 뜻을 갖고 계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살면서 겪은 우여곡절들은 항상 성장을 위한 고난과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모이고 힘이 돼서 ‘하보우만의 약속’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살 생각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그 분이 한성(漢城)감옥에 투옥돼 있던 1904년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만에 쓴 <독립정신>을 권합니다. 옥살이 중이던 29세 청년이 쓴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길과 국제정세를 명쾌하게 분석한 책입니다. 저는 <독립정신>을 읽고 이 대통령을 새롭게 봤어요. 벅차고 감동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이장호 감독이 사무실에 두고 있는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송의달 기자
이장호 감독의 영화감독 데뷔 40주년 기념 특별전 포스터
여기까지 송의달의 모닝라이브였습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늘 환영합니다. edsong@chosun.com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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