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가들은 장난꾸러기? - 화가들의 유머를 엿볼 수 있는 그림, 트로니
화가들은 장난꾸러기? ‘트로니(tronie)’를 보다 보면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하품하는 사람,
술에 취해 주정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놀리는 사람,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트로니는 얼핏 보면 초상화 같지만 그와는 구별되는 독립된 장르다.
트로니를 엄밀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네덜란드어 트로니를 우리말로 하면 ‘얼굴’인데,
그
뉘앙스에 좀 더
충실하자면 대체로 ‘상판’,
‘낯짝’에 가깝다.
그러므로 사람의 ‘낯짝’을 그린 그림을 일러 트로니라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트로니 가운데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서 엿볼 수 있듯 사람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지 않고 진지하고 우아하게 표현한 것들도 있다.
심지어 얼굴이 아니라 전신상을 그린 것을 트로니라고 부른 사례도 있다.
중요한 것은,
트로니는 초상화처럼 사람을 특정한 그 누구로 그리지 않고,
연령이나 인종,
직업,
신분 등에 따라 일정한 유형으로 포착해
표현하거나 특별한
인상과 표정 등에
초점을 맞춰 이를 부각시켜 그린 그림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모델이 되어 그려진 그림이지만 그림 속의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화가가 일종의 훈련이나 재미를 위해,
혹은 시장에서 원하는 수요자를 위해 그린 그림인 것이다.
그 이름이 네덜란드어로 되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트로니는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에서 크게 유행했다.
트로니의 기원을
이야기하자면,
트로니는 16세기의 네덜란드 화가들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로테스크한 드로잉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오나르도는,
일련의 기괴한 두상들을 (주로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한 형태로) 드로잉으로 그렸는데,
이런 형식을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이 지역에서는 다양한 표정과 인상,
유형의 사람들의 머리를 그린 그림들이 늘어갔다.
이런 관습은 역사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제작 관행과 맞물려 보다 많은 트로니를 낳게 되었다.
역사 주제를
그리던 화가들은
본 그림을 제작하기 전에 습작 혹은 예비 그림으로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포즈를 연구해 그리곤 했는데,
이 가운데 얼굴을 집중적으로 ‘스터디’한 것들이 트로니로 시장에 나왔다.
화가가 제자들과 조수들의 실력 및 기량 향상을 위해 보고 공부할 대상으로 그려 놓은 얼굴 그림들도 트로니가 되었다.
이런 트로니의 확산과
관련해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이 시기 네덜란드의 미술 시장이 자유 시장으로서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 시장의 존재 없이는 트로니의 발달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술 시장이 자유 시장으로 발달하기 전에는 미술품은 대체로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교회나 귀족 등 패트런이 특정한 화가에게 작품을 주문하면 작가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이를 제작했다.
그러니 이런 시장에서는 고객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를 주문할지언정 누구를 그렸는지도 알 수 없는 트로니를 주문할 리가 없었다.
화가들이야 역사화를
위해 혹은 제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습작이나 예비 그림의 형태로 트로니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주문 중심의 시장에서 이런 그림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 시장은 화가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살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품을 제작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고,
고객은 그렇게 완성되어 나온 작품들 가운데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것을 사는 것이니,
트로니 같은 그림들이 팔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이런 자유 시장이 발달한 것은,
당시 네덜란드의
부가 급속히 확대되고
공화정이 들어서서 귀족이나 교회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시장의 주요 고객이 되어버린 탓이 컸다.
자연히 그림의 주제나 장르가 다른 지역보다 매우 다채롭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트로니도 온갖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독특하고 과장된 표정과 인상을 지어 보이는 그림으로 발달했다.
화가들의 입장에서는 불특정 고객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니 자신의 작품이 시장에서 보다 눈길을 끌고 팔릴 수 있도록 대중성과 차별성을 가져야 했다.
이런 조건들이 화가들로 하여금 기괴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혹은 과장된 표현이 첨가된
트로니를 그리게
했다.
그 덕에 우리는 옛 화가들의 유머와 장난기를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는 이미지로 만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진 트로니 몇 점을 함께 감상해 보자.
술 취해서 몽롱,
담배 연기에 한 번 더 몽롱
곰방대를 든 남자가
입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 자체가 그다지 점잖아 보이지 않는다.
술에 잔뜩 취한 걸까. 남자의 손에는 곰방대뿐 아니라 술병도 들려 있다.
불콰한 표정이다.
입의 형태로 보아 담배 연기로 고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고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연기가 제멋대로 흘러간다.
왠지 능력도 없으면서 쓸 데 없는 일에 열정을 낭비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것 같다.
그림 속의 인물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토대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욕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그림
그림 속의 남자는
방금 뭔가 입에 안 맞는 것을 삼킨 게 분명하다.
손에 든 것들로 보아 약을 삼킨 것 같다.
쓴 약은 몸에 좋다고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 약의 정체가 왠지 의심스럽다.
인상적인 것은 그림의 주인공이 역겹거나 쓴 것을 마신 게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의 표정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오늘날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이 무렵의 유럽 화가들은 미각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도 그림 속의 인물이 직접 먹는 장면은 잘 그리지 않았다.
음식물을 들고 있거나 보고 있는 상태로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
트로니였던
까닭에 이렇게 과감하고도 재미있는 섭취 장면이 그려졌다.
그림의 인물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트로니
트로니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림 속의 인물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인 데다가 자신들의 지위를 의식한 듯 그림 안에서도 근엄하거나 초연한 표정을 짓는 반면,
트로니의 인물들은 평범한 서민들이 대부분이고 표정도 우스꽝스럽거나 장난스러워 보여 그다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그림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는 그들과 더 가까운 사이인 듯 느끼게 된다.
아드리안 브라우버르가 그린 이 그림도 보는
이의 경계심을
금방 풀어버린다.
아니,
‘지금 나랑 놀자는 건가’ 하는 생각에,
이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나도 그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렇게 그림의 인물은 지금 손가락까지 써 가며 매우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을 만들고 있다.
덩치 큰 남자도 아프면 운다
루카스 프란호이스(소)는
안토니 반 다이크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엄숙한 제단화와 품격 있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런 그림만 보다가 이 그림을 본다면 매우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덩치가 좋은 남자가 울상을 짓고 있다.
지금 거의 눈물을 흘리며 울 지경이다.
팔에 붙여놓았던 석고를 떼려니 무척 아픈가 보다.
석고 아래로는 상처로 보이는 자국이 있다.
그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고,
석고를 떼는 순간 솜털도 뜯기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플 수밖에. 이처럼 고통스러우면 더 이상 체면이고 뭐고 없다.
이 그림은 “아프면
이렇듯
호들갑 떠는 것,
그게 진정한
인간의 실존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델이 된 남자는 화가 자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을 호방하게 만드는 술
프란스 할스의 <
쾌한 술꾼>은 트로니 가운데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특별히 과장된 표현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 남자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포착해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불그스레한 얼굴에 약간 풀린 눈동자,
왼손에 술잔을 든 모습에서 우리는 제목을 보지 않아도 그림 속의 남자가 술꾼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을 마시면 사람들은 대체로 호방해지고 쾌활해진다.
이 사람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금 그림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그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술자리로 초대하려고
한다.
격식이나 예의 같은 것은 다 필요 없고 그저 인간으로서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술이 들어갔을 때처럼 우리의 마음이 푸근해지고 넉넉해지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만큼 화가의 탁월한 관찰과 표현이 돋보인다.
당대 네덜란드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낙천성이 활기찬 몸짓과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라 하겠다.
우스워도 참자
뿔 나팔을 불던
사람이 우리를 쳐다본다.
양 볼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얼굴 모양새가 아주 우스워졌다.
그런 모습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저렇듯 열정적으로 나팔을 불다가 불현듯 주변의 시선이 의식이 된 것 같다.
옆으로 눈을 굴리게 되었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기분 나쁘게 왜 날 자꾸 쳐다봐” 하는 듯한 그의 속마음이 생생히 전해져온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도 꾹 참아야 한다.
그의 연주에 감동한 듯,
자아낼 수 있는 가장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봐야 한다.
그가 다시 눈길을 돌릴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내 안의 표정을
슬며시 드러낼 수 있다.
이주헌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하는 아트 스토리 텔러다.
최근 저서로는 <혁신의 미술관>(아트북스),
<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 등이 있다.
더운 여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풍경이 바다 풍경이다.
여름을 사랑하는 많은 화가들이 바다를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물놀이를 하거나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화사한 지중해 햇빛으로 감싸 그린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만큼 사랑스럽고 친근하며 매력적인 바다 풍경을 그린 사람도 드물 것이다.
소로야의 그림을 보다 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듯 내면으로부터 활력이 솟아오른다.
소로야가
이처럼 밝고 긍정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바다와 고향 발렌시아를 사랑했다.
행복이 가득한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가 두 살 때 부모를 여읜,
불행한 어린 시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을 때 자신의 가족을 끔찍이도 소중히 여겼다.
여행을 떠났다 하면 그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곤 했다.
“나의 모든 사랑은 당신을 향해 있어. 우리 아이들에 대한 나의 크나큰 사랑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수많은 이유로 나는 당신을 더욱더 사랑해. 당신은 나의 몸이고 삶이며 마음이자 영원한 이상이야.”
소로야는
마드리드에 살았지만 여름이면 온 가족을 데리고 발렌시아로 갔다.
그의 가족에게는 발렌시아의 바닷가가 낙원이었다.
이 낙원은 그의 예술에 끝없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창조의 수원지이기도 했다.
발렌시아의 바닷가에서 명랑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들,
그렇게 사람과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진 세상을 그는 현장에서 직접 그리곤 했다.
그로 인해 그의 그림들 중에는 바닷바람에 실려온 모래 알갱이들이 캔버스에 내려앉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그려진 바다 풍경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갔고 이는
그로 하여금 지침 없이 이 주제를 반복해 그리도록 만들었다.
선순환하는 행복과 기쁨이 그리는 화가와 보는 관객을 끝없이 사로잡는 예술이라 하겠다.
소로야의 바다 그림들
흰옷을
입은 우아한 여인들이 해변을 걷고 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여인들의 산책에 상쾌함을 더해준다.
그림의 두 여인은 소로야의 아내와 딸이다.
여인들의 흰옷과 그 뒤로 펼쳐진 푸른 바다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청량감을 자아낸다.
아내와 딸에 대한 화가의 사랑의 눈길 또한 그 못지않게 청량하다.
소년과
소녀가 엎드려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년은 벌거벗은 채로,
소녀는 옷을 입은 채로 한여름의 바다를 즐기고 있다.
지금은 물이 얕게 찰랑대지만 곧 힘찬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재미지만,
파도에 몸이 휩쓸리는 것도 큰 재미다.
그러면 서로 한바탕 웃고 또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일어나 모래성도 쌓고 달리기도 할 것이다.
그 웃고 떠들고 논 시간만큼 구릿빛으로 달아오른 피부가 지금껏 아이들이 느낀 행복의 농도를 전해준다.
‘나
잡아 봐라’는 만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 중의 놀이다.
아이들은 신이 나면 달리게 되어 있고,
달리다 보면 서로 잡고 잡히는 일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친밀감이 서로의 유대를 돈독하게 해준다.
바다에서 행하는 ‘나 잡아 봐라’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바닷물과 햇빛도 함께하는 놀이이니 그 어디에서 하는 것보다 해방감이 배가 된다.
파도
소리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듯하다.
파도 놀이에 즐겁고 또 즐거운 아이들. 그대로 자연의 원소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것 같다.
바다는 이처럼 우리의 몸을,
세포를,
영혼을 원초의 상태로,
순수의 상태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꼬맹이들이
즐거운 물놀이를 마치고 뭍으로 나오고 있다.
누나가 크고 흰 타월을 들고 동생들을 맞아준다.
보아하니 누나도 지금껏 한참 물놀이를 했다.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자신도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어야겠지만 누나로서 동생들 챙기는 게 먼저다.
이처럼 아이들이 물놀이를 마치려는데 소가 바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이제는 소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이다.
아이의
몸을 말리느라 타월을 씌웠다.
그 타월이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따사롭기 그지없다.
바닷가에서 신나게 논 아이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아이는 엄마의 시선과 저 태양의 시선이 사실은 하나임을,
그리고 엄마의 품과 바다의 품 또한 하나임을 언젠가 선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듯 놀 때는 바다가 안아주고 쉴 때는 엄마가 안아준다.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한 아이는 행복하다.
더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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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yijooheon98)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이주헌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하는 아트 스토리 텔러다.
최근 저서로는 <혁신의 미술관>(아트북스),
<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 등이 있다.
사랑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
심지어 목숨까지 건다.
사랑의 묘약은 이런 열망을 반영하는 상상의 비책(祕策)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의 염원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이 비책에 대한 상상은 문학과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 주제를 그린 그림들을 봄으로써 사랑의 실현을 향한 인간의 열망,
그 강렬한 정서를 음미해 보자.
죽어야 끝나는 사랑
사랑의
묘약을 주제로 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이죄)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켈트 족의 전설로 오래 구전되어 오다가 12~13세기 경 필사본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콘월의 왕 마크는 조카인 트리스탄으로 하여금 자신의 왕비가 될 여인을 찾아 데리고 오게 했다.
그 왕비가 될 여인은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였다.
이졸데의 어머니는 딸이 콘월로 갈 때 자신의 딸과 그 남편이 될 마크의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위해 사랑의 묘약을 들려 보냈다.
그런데 우연찮은 실수로 그 묘약을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돌아가는
배 안에서 함께 마셔 버렸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연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랑이 마크 왕의 분노를 사 결국 두 사람의 운명은 비극을 향해 내달리게 되었는데,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둘 다 죽음으로써 이 사랑이 끝나게 했다.
그만큼 강렬한 약이 사랑의 묘약이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배 안에서 이 사랑의 묘약을 나눠 마시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졸데는 잔을 들고 있고,
신부임을 나타내는 그녀의 흰 베일이
바닷바람에
휘날린다.
곧 다가올
사랑의 폭풍을 예감하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의 번뇌
프랑스
화가 가스통 뷔시에르의 <이죄>는 묘약의 잔을 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이졸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졸데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보니 그 내용이 여러 갈래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두 사람이 묘약을 마시게 된 게 사실은 이졸데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한다.
그에 따르면,
이졸데는 자신의 삼촌(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약혼자) 모롤드를 전투에서 죽인 작가 트리스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복수로 함께 독약을 마셔 트리스탄을 죽일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졸데도 함께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놀란 이졸데의 시녀 브란게네는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건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일을 틀어버렸다.
차라리 사랑에 빠지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뷔시에르의 그림에서 이졸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그녀는 지금 타오르는 복수심에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게 아닐까. 혹은 자신도 예기치 못한 운명의 행로를 어렴풋하게라도 예감해 고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어떤 천하장사도 사랑의 힘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몰아칠 사랑의 폭풍 앞에 선 한 여인의 번뇌가 시나브로
전해져오는 그림이다.
뜨거운 열정을 불러오는 약을 차가운 가슴으로 제조하는 마법사
영국
화가 에블린 드 모건의 <사랑의 묘약>은 사랑의 묘약을 제조하는 여성 마법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황금빛깔의 옷을 입은 마법사가 사파이어 빛 푸른 잔에 빨간 액체를 따르고 있다.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마법사의 표정은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능숙한 지를 잘 보여준다.
이 묘약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이를 증명하는 게 저 먼 풍경 속의 두 연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테라스 위에서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사랑에 겨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마법사가 앉은 벤치 위에 놓인 흰 천은 저 여인의 드레스로부터
빠져나온 것으로,
두 남녀(혹은 남녀 중의 한 사람)는 조금 전 이곳에서 묘약을 마셨고,
둘은 이제 깊고 진한 사랑에 취해 있다.
이 묘약의 마법적인 힘을 상징하는 화면 속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검은 고양이다.
두 눈이 초록색인 이 검은 고양이는 이성 너머의 힘,
그러니까 연금술이나 마법 같은 금기시된 힘을 상징한다.
에블린 드 모건 특유의 화사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 주제와 매우 잘 어울린다.
사랑이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키는 묘약
목이
마른 듯 여자가 급히 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있고,
남자는 여자를 도와주려는 듯 잔을 잡아주고 있다.
여자는 잔속의 내용물을 들이켜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런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번진다.
그렇다.
저 잔속의 내용물은 사랑의 묘약이다.
여자를 사로잡기를 원했던 남자는 일부러 여자에게 갈증이 일어나도록 상황을 만들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는 남자가 준비한 사랑의 묘약을 정신없이 마시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다는 기쁨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악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껏 그와 가까이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묘약이 있는 한 세상은 그의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의 표정이 일러주듯 그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인 것이다.
헝가리 출신으로 주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미하이 지치는 화가로서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특히 에로틱한 드로잉으로 유명했다.
묘약의 힘을 살짝 맛보게 하는 그림
영국
화가 비어트리스 오포는 ‘오포의 두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젊고 아리따운 여성들의 두상이나 반신상을 많이 그렸다.
<사랑의 묘약>은 일반적인 오포의 그림과 달리 세로로 긴 그림인데다 거의 전신상에 가깝다.
그 주인공이 지금 카우치 같은 곳에 기대어 관객,
곧 우리를 바라본다.
그녀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보이는 표범 가죽은 그녀가 야성이나 자연의 힘과 가까운 사람임을 감지하게 한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작은 약병에는 바로 사랑의 묘약이 들어 있다.
그 액체를 왼손에 든 그릇에 따랐는지 그 그릇으로부터
김 같은 것이
올라온다.
오른쪽 공간에는 뿌연 연기 같은 게 몰려 원을 만드는데,
마치 우리를 최면에 빠뜨리려는 듯 끝없이 빙글빙글 돈다.
그 밑의 늙은 개는 이 모든 일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쉬고 있다.
볼수록 나른해지는 그림이다.
이 나른함으로 사랑의 묘약이 지닌 신비한 힘을 살짝이나마 느껴 보게 하려는 그림 같다.
마지막 희망
화면
오른쪽에 한 소녀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두꺼운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날씨가 꽤 쌀쌀한 것 같다.
왼편 오두막의 열린 문으로 나이 든 노인이 머리를 내민다.
이 노인은 마법사다.
소녀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침울한 소녀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 소녀는 지금 짝사랑에 빠져 있다.
이 상사병으로 인해 소녀는 거의 죽을 지경이다.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다.
소녀가 생각하기에 그런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마법사뿐이다.
저 노인은 정말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줄 수 있는 마법사일까.
만약 그가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줄 수 없다면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자신의 아픈 비밀을 안고 힘겹게 이곳까지 찾아온 소녀는 과연 밝은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가야 할까. 무성한 만큼 무심기만 한 앞뜰의 풀들은 소녀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산들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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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yijooheon98)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이주헌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하는 아트 스토리 텔러다.
최근 저서로는 <혁신의 미술관>(아트북스),
<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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