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린다는 것
오전에 TV를 켰는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나오고 있었다.
어제 미팅으로 방문했던 원주에서 한 정치인이 관련 내용으로 교차로에 걸어놓은 현수막을 본 터였다.
‘아,
오늘이 그날이구나.’
커피를 내리면서 TV에 눈을 흘깃흘깃 옮기는데 서해수호 용사들의 자녀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꼬맹이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커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있었는데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이었다.
‘아... 이 무슨...’
난 곧바로 채널을 돌렸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문득,
그것도 청천벽력처럼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슬픔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의연하고 씩씩하게 인터뷰를 했지만,
보는 나는 슬펐다.
카메라 뒤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보다 더 보기 싫은 것은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인터뷰를 보며 눈물을 찍어내는 장면을 인서트 하는 것이었다.
마치 의도된 신파처럼. 이거 기획한 사람이 누구야. 전 국민에게 생중계까지 하다니. 최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본 장면이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데,
미국 여행 중 보았던 작은 영결식이 생각났다.
비교할 이야기도 아니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오전에 보았던 기념식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떠오른 인상 깊은 장면이랄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피어39라는 항구가 있다.
볼거리,
살 거리,
먹을거리가 널려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포인트다.
이곳의 명물로 손꼽히는 것은 단연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바다사자들인데 떼를 지어 ‘옹옹’거리며 우는소리가 어찌나 재밌는지 우울한 기분도 금방 풀릴 정도다.
그날도 바다사자의 울음소리를 쫓아 피어39를 찾은 터였다.
피어39의 지형을 사각형이라 치면 바다사자 서식지는 그 왼쪽 테두리쯤에 자리 잡고 있다.
관광객이 홍수처럼 쏟아져 동서남북 정신없이 발을 옮기는 중심부와는 달리 조용한 편. 이곳에서 관광객 같지는 않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세 명의 미군. 한 사람은 트럼펫으로 기교 없이 정제된 곡조를 천천히 연주하고 있었고 다른 두 사람은 마치 로봇처럼 힘이 바짝 들어간 동작으로 격식을 갖춰 성조기를 접고 있었다.
그 앞에는 가족인지 지인인지 서로 친분이 있어 보이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중 꽃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감색 모자를 쓴 금발의 고운 할머니 한 분은 안경 사이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미국인들 중에는 차에도 성조기를 매달고 다닐 만큼 조국애가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던 미국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차 뒤꽁무니에서 휘날리는 성조기,
주택 마당을 장식한 성조기를 내 눈으로도 이미 본 터였다.
자연히 내 짧은 생각의 끝은 ‘할머니=애국자’의 공식이었다.
‘이 할머니도 나라를 정말 사랑하나 보다,
국기를 보고 감동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나 보다’….
피어39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연 이벤트인 줄 알고 성조기를 다 접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며 사진을 몇 컷 찍었다.
마침 꺼내든 게 휴대전화 카메라라 촬영음을 감출 수 없었기에 찰칵찰칵 소리까지 내면서 말이다.
이윽고 트럼펫 연주가 멈추고,
두 군인이 마치 풀 먹여 다린 듯 정갈하게 접은 성조기를 할머니께 안겨주고 돌아설 때,
그제야 내가 무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보고 즐기라고 만든 이벤트가 아니었다.
미국에선 군인이나 참전용사가 목숨을 잃었을 때,
유가족에게 성조기를 전하는 전통이 있다.
보통 장례식 중에 삼각형으로 국기를 접어 유족에게 전달하는데,
나중에 미국 친구에게 물어보니 유해를 찾지 못한 전사자의 경우 이렇게 국기만 전달하는 정도로 소박하게 장례식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단다.
“지금 미국에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어디서 전사했다는 거야?”
내 무지한 질문에 친구가 대답했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미군이 얼마나 많으냐고. 아프간 등 위험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곧 숙연해졌다.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나랏일을 하느라 목숨을 바친 사람인데,
관광지 한가운데서 어쩌면 이렇게도 소박하게 안녕을 고하는 것일까. 친구가 말했다.
아마도 가족의 의사를 존중했을 거라고. 전사자에 대한 예우와 존중을 중시하는 미국이니,
가족이 원하면 성대한 영결식을 치렀겠지.
이 작은 영결식의 주인공은 얼마 전 전사했을 수도,
혹은 그 시기가 꽤 지난 이 일지도 모르겠다.
유해가 있을 수도,
찾지 못한 탓에 없을 수도 있다.
할머니의 아들일 수도,
남편일 수도,
어쩌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잃은 가족을 보듬는 마냥 성조기를 손으로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가슴에 소중히 품는 할머니. 온 마음이 슬픔에 젖어있으면서도 애써 의연함을 보이려는 그녀의 모습에 내 코끝이 시큰해졌다.
누군가의 명예로운 죽음,
그를 기리는 미군의 예우,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별. 그날 이 장면을 쭉 지켜보며 내가 느낀 것은 강요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슬픔과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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